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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고 따르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모든 제자들이 모여서 그분의 어록을 만들려고 회의가 시작된다.
어떻게 선생님의 말씀들을 모으며 또 배치할까? 
선생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 중에 가장 뜻 깊은 말씀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이 어록집을 통해 선생님의 진면목을 드러내며,
또 후세에게 선생님이 만인의 사표이심을 알릴 수 있을까?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불리는 10명을 포함하여 공자의 제자는 적게는 70명이 넘었고, 많게는 3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공자 사후에 이들 중 일부가 지금 우리가 보는 논어를 편집했을 것이다. 
논어 자체의 분석으로 볼 때, 증삼을 증자라고 부르는 이들과 유약을 유자라고 부르는 이들에 의해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실체는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과정이 어쨌든, 누가 했든 우리에게 주어진 논어라는 책은 분명 제자들의 고심을 통해 전해진 공자 선생의 말들이다. 

그런 고민 속에 탄생한 논어에서 나오는 선생님의 첫 마디는 바로 "배운다"(學)라는 말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는 다음과 같은 총론으로 시작한다. 

"합리적 사유를 할 줄 알고, 훌륭한 인재를 구할 줄 아는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명성을 얻기에는 충분하지만 대중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현자가 있는 곳에 찾아가 고개 숙이고 배우며, 멀리 떨어져 있는 사태까지도 몸으로 겪고 살펴 판단하는 지도자는 대중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하지만 백성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 군자(지도자)가 만약 백성의 삶의 양식을 변혁시키어 새로운 풍속을 이루고자 한다면 배움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니된다."(도올 김용옥 선생의 번역을 약간 쉽게 다듬었음) 

사람은 배워야만 사람이다. 즉 인간의 모든 문명은 앞선 인간의 문명을 배우고 그것을 넘어서면서 발전해 왔다. 
문명이 축적된 지금, 모든 인류의 생활방식에 따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배움은 필연이다. 
즉 배움이란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인간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요청되는 것이다. 
공자가 당시에 무엇을 배웠는가는 대체적으로 당시의 과목이었던 육예(六藝: 禮, 樂, 射, 御, 書, 數)라고 주석가들이 말하고 있지만, 배움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더라도 배움의 필연성과 필요성은 조금도 감소되지 않는다. 

모든 제자가 동의하는 선생님의 모습!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그것은 "배움"이라는 것이다. 
선생이기에 가르치는 자로 요약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배우는 자로 요약된다. 
이것이 공자의 힘이다. 

김영민 교수의 글 중 "선생"의 정의에 대한 것이 있다. 

"선생이란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우선 ‘나’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선생은 먼저 알아낸 것을 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앎을 위해서, 그리고 앎과 삶의 일치를 위해 먼저 노력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와중에서 넘어졌든 자빠졌든, 다만, 그 노력의 치열한 흔적, 그 흔적의 길을 솔직하고, 섬세하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선생은 먼저 산정(山頂)에 올라서서 두 다리를 뻗고 산 아래를 향해 두 손을 흔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산정을 향해서 먼저 출발한 사람이며,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이며, 그 실수의 경험을 헛되어 하지 않는 사람이며, 그 경험에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닦아내는 사람이다. 그러니 선생은 강단 위에서 강단 아래로 정답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답이 없는 절망 속을, 해결이 없는 배회 속을 얼마나 멋지게 견딜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람이다. 잘해야 그는 정답을 찾기 위한 도정에서 얻은 상흔을 보여줄 뿐이며, 심지어 오답투성이의 앎과 삶에서도 섣부른 권태나 냉소에 빠지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용기 있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선생은 가르칠 ‘무엇’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그는 가르칠 것이 없는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람일 뿐이다. 다만 좋은 선생이란 허우적대면서도 격(格)이 있고, 자빠지면서도 멋이 있다는 것 뿐." (김영민, <문화(文化), 문화(文禍), 문화(文和): 산문으로 만드는 무늬의 이력> 동녘. 1998. 193-194.

그렇다. 선생은 가르치기 전에 먼저 배우는 자다. 

당시 모든 예법의 전문가로 일컬어졌던 공자, 그런데 그는 태묘에 들어가서 매번 묻는다.(1)
공자는 이미 알았다고 하는 순간 빠지게 되는 오만과 매너리즘을 늘 경계하는 성찰의 인간이다. 열 가구 모인 동네에 자신보다 배우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말하고(2)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반드시 자신을 제외한 두 사람을 늘 선생으로 삼았다.(3)

세상의 최고의 교수나 선생이라도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자신이 다 알았다고 하는 인간이다.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는 인간, 배울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는 인간, 즉 오만하고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인간은 가르칠 수 없다. 

학기에서 말하듯 진정한 지도자는 배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늘 이 땅의 정부 어느 관료라도 배움의 마음이 있다면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300명 넘는 국민이 수장되었는데도 배우지 못하는 이들, 공자의 제자들은 이들을 사람이라 부르지 않는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보여도, 그들은 금수에 불과한 것이다. 
금수가 국가개조를 한다면 국가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주.


(1) 八佾 15, 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선생님께서 태묘(노나라를 처음 세운 주공의 사당)에 들어가셨을 때 일마다 물어보셨다. 어떤 이가 말했다. “누가 추인의 자식이 예를 안다고 했던가? 태묘에 와서는 일마다 묻던데.” 선생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이다!”

(2) 公冶長 27,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3) 述而 21,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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