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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탐욕은 죽음을 부른다.


- 항공연대의 생존권 사수 투쟁 -



하효열 (대한항공조종사노조 교선실장)



1. “맥시멈으로 돌리는구만...”


1997년 8월 6일 괌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801편 조종사 중 한 명이 사고가 나기 얼마 전 같이 비행하던 동료에게 한 말이다. 세 사람의 조종사들은 목적지인 괌 아가나 공항에 접근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던 중 당시의 월간 비행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서로 사정들을 잘 아는 사이지만 막상 자신들이 얼마나 무리한 비행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고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 음성기록장치(CVR-블랙박스의 한 부분)에 또렷이 남아 있다. 굳이 사고 조사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더라도 조종사들의 누적된 피로가 그 사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한항공에 조종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생긴 것은 이로부터 2년 여 후인 1999년 8월 30일이다. 노조 합법화를 위해 9개월여의 진통을 겪고 다시 다섯 달이 지난 후인 2000년 10월 22일, 조종사들은 사측과 첫 번째 단체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협상에서 최대 쟁점이 되었던 것은 연간 비행시간을 1,000시간이하로 줄이는 문제였다. 대한항공은 ‘사고 항공사’라는 온갖 사회적 비난과 항공기 운항 체제를 개선하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인원 증가 때문에 전체 인건비가 늘어날 것이 예상되는 이 조항만은 절대 들어줄 수 없다고 끝까지 버텼고, 조합에서는 이 조항이 타결되기 전에는 절대 파업을 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사실 이 조항은 당시 일반적인 장거리 기종 조종사들의 비행시간을 거의 40% 정도 줄여 월 평균 83시간 이내로만 비행기를 태우라는 요구였다. 자본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이틀에 걸친 힘겨루기 끝에 결국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요구는 관철되었다. 노동자들의 굳건한 투쟁으로 조종사들은 자신의 생명과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낸 것이다.


2. 2004년 3월 3일 항공연대 깃발 올리다


2004년 3월 3일 민주노총 산하 항공관련 산업 노동조합 네 개가 모여 항공연대를 출범시켰다. 한국공항공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아시아나공항서비스지부,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으로 시작된 항공연대는 이후 3월 31일까지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동조합과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이 합류하면서 소속 조합원 8,000여명의 명실상부한 항공관련 노동자의 대표 조직이 되었다.

이 땅에 항공 산업과 관련된 민주적 노동조합이 생긴지 17년 만에 탄생한 최초의 연대체였다. 각 노동조합이 처한 현실과 인적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연대체를 구성하는데 이리도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이다. 처음 모이기는 어려웠지만 한 번 모인 이후의 진행은 순조로웠다. 2004년 3월 3일 첫 회의 때부터 ‘2004 임단협 및 주5일제 협상 과정에서 공동투쟁 및 집행회의 정례화’를 결의하였고, 두 번째 회의에서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실시’를 공동요구안으로 정하는 등 실질적인 공동투쟁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또한 사회 공공성 강화 투쟁의 일환으로 ‘인천국제공항통행료인하 투쟁’에 항공연대가 참여하여 공항에서 인천방향의 통행료를 없애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3. 빗속에서 피어난 동지애 - 5.28 항공연대 결의대회


2004년 5월 28일, 600여명의 항공연대 동지들이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단 한명의 이탈 없이 2004년 임단투에서 공동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결의대회는 나이와 직종을 초월한 최초의 항공노동자 연합집회였다. 서먹서먹했던 첫 분위기는 각 단사 율동패들의 연합공연을 기점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여섯 명의 위원장들이 각각 공동투쟁을 다짐하는 시점에 이르자 참석자들의 연대투쟁에 대한 확신은 최고조에 달했다. 자본의 지속적인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한자리에 모이기만해도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하게 되고, 각자 처한 현실이 아무리 달라도 함께 싸우는 것이 노동자들의 유일한 무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4. 항공연대, 이라크 파병군 및 물자의 수송을 거부하다


“우리 항공 관련 노동자들은 과연 안전한가?”


2004년 6월 21일, 항공연대 소속 조합의 합동 간부 수련회 장에서 한 간부가 이렇게 말했다. 고 김선일씨 이야기가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였다. 이 질문이 좌중에 떨어지자 모든 참석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 항공 노동자들은 이라크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인가? 한참이 지난 후, ‘우리가 뭐든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앞장서서 이 부정한 전쟁을 막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는 것이 우리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 아닌가? 우리 항공 노동자는 테러 집단의 첫 번째 목표가 될 것이 뻔한데 이렇게 손을 놓게 있어도 되는 것인가?’는 등 질문 아닌 질문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또다시 탐욕에 눈먼 자본과 권력 때문에 노동자와 민중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사실 6월 21일의 항공연대 간부 수련회는 7월로 예정된 항공연대 공동투쟁의 구체적인 일정 및 전술을 토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미국의 이라크침략을 돕기 위한 한국정부의 파병 결정 때문에 항공 노동자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음을 절감하게 되자 향후 대책 마련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라크 파병 결정에 반대함을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하자는 발의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어떤 항공 노동자도 이 침략전쟁에 동조하는 자들의 편이 아님을 밝히자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들이 항공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임을 알리자는 것이었다.

비록 성명서를 발표하자고 결정한 것으로 이날 회의는 끝이 났지만 성명서 한 장이 우리들의 생명을 지켜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모르는 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과 아시아나항공 및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동조합은 정부의 추가 파병 강행 결정이 한국 국적 항공기의 테러 위험을 배가 시킬 수 있음을 통감하고 추가 파병을 막을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왔다. 어떤 조종사도 파병군 및 파병 물자를 수송하다 테러의 표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노동자도 추가 파병 및 물자 수송을 도왔다는 이유로 위험에 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각 조직의 대의원 대회 등을 통해 ‘파병군 및 물자 수송 거부’라는 아주 상식적인 대응이 결정된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각 항공사에 정부와 파병과 관련된 수송 계약을 맺지 말 것을 요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모든 항공연대 소속 노동조합이 단 하루 만에 이 결정에 동참하였다.


자본의 탐욕은 죽음을 부른다


229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1997년 대한항공 괌 사고는 현장에서 안전을 책임져야 할 노동자의 상식적인 요구를 무시하며 자본의 논리만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고 조사 결과가 아무리 조종사의 과실로 결론이 나더라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 하나 있다. 사고 조종사는 자본의 탐욕 때문에 무리한 피곤한 상태로 비행을 하고 있었다. 과연 피로에 찌든 조종사와 건강한 조종사가 동일한 상황에 놓인다면 누가 더 올바른 판단을 하겠는가? 조종사를 맥시멈 스케줄을 돌리는 항공사와 휴식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항공사의 비행기 중 어떤 비행기를 타고 싶겠는가? 결국 자본의 탐욕에 무고한 노동자와 승객들만 희생된 것이다.

또 한사람의 노동자가 희생되었다. 고 김선일씨는 ‘미국의 침략 전쟁에 반대함과 한국 정부의 추가 파병 중지’를 목 놓아 외쳤지만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자본과 권력은 국익을 이야기하며 노동자의 절규를 무시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탐욕은 결코 국익이 될 수 없음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자본가 자신들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탐욕 때문에 또 다른 젊은이와 노동자들이 죽어갈 것이다.




운송하역노조 물자 수송 거부에 동참하다


6월 26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운송하역노조가 이라크에 파병되는 자이툰 부대의 군수물자 수송을 거부했다. 이 발표를 듣고 항공연대 소속 많은 간부들은 다시 한 번 ‘이라크 파병군 및 물자 수송 거부’ 결정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 때 많은 항공연대 간부들이 ‘우리는 공항을 막고, 철도노조와 화물연대는 지상을, 항구는 항만노조 등에서 막으면 어떻게 파병이 가능하겠는가?’라고 하며 뼈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운송관련 노동자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생명과 동지들의 안전을 지켜내자고 결의한 것이다.

이제 모든 노동자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우리는 내 일 네 일을 따져서 골라가며 싸워서는 절대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명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연대 노동자들이 이런 사실을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을 이제 단축시켜야 한다. 항공연대 노동자들이 테러의 위험에 노출 된 후에야 알아차린 진실을 다른 노동자들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연대해야 한다. 어떤 노동자도 자본의 마수로부터 안전하지 못함을 하루빨리 알아 차려야한다.


항공노동자들의 힘만으로 이라크 파병 막기


항공노동자들의 힘만으로 이라크 파병을 막기 위해서는 끈질기고 일사불란한 투쟁이 필요하다. 파병관련 물자 중 무게가 나가는 것들은 대부분 배를 이용할 것이다. 대신 병력이나 고가의 첨단 장비 등은 항공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비행기를 한 대 공중으로 날리는데 수많은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기에 어느 한 노동자라도 손을 놓으면 그 항공기는 절대 뜨지 못한다. 지금 항공연대 소속의 양대 조종사노동조합의 조합원들만 손을 놓겠다고 한다. 보다 많은 항공 노동자들의 손놓음이 절실한 시기이다. 그리고 먼저 수송을 거부하겠다고 결의한 노동자들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더 많은 노동자들의 피 흘림을 피할 수 있다. 전체 노동자들의 동참만이 자본의 탐욕을 꺾을 수 있다.


5. 아쉬움과 기대


처음의 결의와는 달리 항공연대 소속 노동조합 중 3개 조직만 합동조정신청을 하였고, 최종적으로는 2개 조합만 파업투쟁 돌입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것은 항공연대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음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짧은 역사와 지도부 중심의 연대체 구성 때문에 공동투쟁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한계를 단 한 번의 결의 대회로 극복할 수는 없었다. 직종 및 직급, 연령, 노동 조건들이 다양함에도 이런 사실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항공연대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 무엇보다 열성적인 간부들이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다. 또한 미흡하지만 2004년 임단투를 통해 항공연대의 위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위력 덕분에 몇몇 단위사업장은 2004년 임단협을 성공적으로 타결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점차 개별 조합원들에게도 전파될 것이다. 우리가 연대할 때 어떤 힘이 생기는지 조금씩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직 마무리는 되지 않았지만 2004년 항공연대 공동투쟁은 다가올 2005년 연대 투쟁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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