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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소통의 소식지
삶의 작은 공간으로부터 희망을 함께 나누는 큰 길에서 만나는 길목
| 길목 | 2016.08.20 | 1328호 |
생각이 말이 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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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성찰
어린잎
- 김용택
나는 바람에 저항할 수 없어요.
나는 바람을 이길 수 없어요.
피었던 꽃이 지고
그 가지에 잎이 돋아나요.
바람은 남쪽에서 불고
동쪽에서도 불어와요.
새가 울고
나비가 날고
바람이 구름을 실어 가도
나는 아직 바람과 맞설 수 없어요.
어디에 부딪쳐도 소리가 나지 않아요.
생각이 말이 되지 않아요.
보세요!
나는 아직 햇살을
받아 들 힘이 없어요.

엄마!
나는 엄마가 곁에 있어야 해요.
하늘뜻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마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누가복음 10:3-6)
나눔과 소통
알리바이 -희일이송
우리는 알리바이를 만듦으로써 어른이 된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숱하게 묻어온 핑계의 무덤들, 생의 알리바이들. 꼰대란 그 핑계의 무덤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은연중 알리바이를 누적하고 있는 요즘의 나 자신을 반성한다. 못내 부끄럽다.
노동자는 어디에 기대란 말인가 -홍여진
판결 선고는 10초에 불과했다. 재판정을 나온 뒤로 10분의 침묵이 흘렀다. 아이처럼 영롱했던 눈빛은 초점을 잃었다. 침묵을 깬 첫마디는 변호사에게 건 전화였다. "예, 졌어요..." 다시 또 침묵이 이어졌다.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해야할 말도 잃어버린 아저씨들 앞에서 나도 말을 잃었다. 힘내시란 응원도, 사법부가 자본가 편이란 욕도, 대법에 기대를 걸어보자는 위로도 공허한 인사치레 또는 희망고문이기에. 침묵에 침묵을 보탤 뿐이었다. "대체 노동자는 어디에 기대를 걸란 것인가." 다시 침묵을 깨고 나온 한 마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라 판정했으나 법원이 뒤집은 상황.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힘도 없는 노동자는 그래, 어디에 기대란 말인가. 중노위는 왜 존재한단 말인가. 터덜터덜. 법원을 나서는 아저씨들의 축 처진 어깨가, 어째 오늘날 평범한 아버지들의 뒷모습 같다. 승소 소식을 기다리는 집에는 또 어떻게 말씀들을 하실지. "술 한 잔 하고 들어가세요."결국 이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힘도 없고, 술도 못 먹는 나는 역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다.
협상의 언어로서의 페미니즘 -뮨규민
1. 어느 여성학자가 말했듯이, 나는 페미니즘이 결국 억압적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한 '협상의 언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는 '협상'과 '설득'을 구분하는 한에서만 그러하다. 협상은 설득에 앞서며, 그래야만 한다.
2. 설득은 더 이상 다른 협상카드가 없을 때 불가피하게 택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설득이 기본적으로 '이것이 당신에게도 유리하다'라는 점을 상대로하여금 믿게 만드는 것이라면, 협상의 기본 자세는 '난 당신이 유리한 게임에 놀아나지 않겠다'이다. 설득에 있어 나는 무조건 상대를 설득시켜야 하지만, 협상에서는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 설득에서 선택권을 쥔 것은 상대이지만 협상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선택권은 동등하며, '주도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협상에 비하면 설득이란 아무리 잘 해봤자 '차악'에 불과하다. 협상이 가능한데 굳이 설득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3. 페미니즘이 '수지 맞는 협상'이 아니라 '호소력 있는 설득'을 요구받는 상황이야말로 어쩌면 이미 페미니즘이 불리해졌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격'은, 당연하게도 저 협상의 '원칙'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놀아나지 않기, 조급해하지 않기, 아쉬워하지 않기.
심마니의 기도 -송무학
산에서 보는 보라색 도라지꽃은 참 곱다. 도라지는 가파른 절벽 바위틈에 잘 자란다.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며 당당히 서있다. 그러나 어쩌면 거기가 좋아서 절벽 바위틈에 있다기보다 그곳으로 쫓겨났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지도 모른다. 약효도 뛰어나고 맛있기도 한 도라지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드나들기 쉬운 곳에서는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심마니고 약초꾼이지만 가파른 경사면 바위틈에서 홀로 자라고 있는 도라지를 캘 때면 마음이 무지 아프다. 보라색 고운 꽃이라도 피어 있으면 더욱 미안하고 아프다. 결국 캐지 않고 돌아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심마니니 캘 수 밖에 없을 때는 기도를 한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이 더 건강해져서 도라지 몫까지 더해 멋지게 살아가게 하겠다고.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다. 심마니 하기 이래저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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