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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맥주에 스미는 인문학)

 

수다3: “조선시대에도 맥주는 있었다!”

(한국 맥주의 역사)

 

고상균

 

1

고대 한반도에도 교회가 있었다?

이런 풍문,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당 제국 시기에 중국에 전래되었던 네스토리안 기독교(경교)의 통일신라 유입설을 말한다. 에페소 공의회(AD413)의 파문으로 지중해일대에서 발을 붙일 수 없었던 네스토리안들은 페르시아, 중국 등에서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기독교 이외 문화권에서 생존해야 했던 이들은 독특한 선교방법론을 수립해 나갔는데, 이는 한 마디로 동화되기!’ 페르시아에서 조로아스터 교와 기독교를 연결시켰던 이들은 중국에 이르러, 하느님을 ()’, 예수를 ()’로 설명하고, 교회를 ()’ 표기하는 등 철저한 동화를 통해 이질감 극복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 당 제국의 수도 장안성에만 경교 사찰이 여러 곳 있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고, 한인들을 탄압했던 원 제국에서는 그 대안으로서의 서역문화로 인식되어 더욱 각광을 받기도 했다. 고대 한반도에 기독교가 전해졌을 것에 대한 가능성은 이와 같은 배경을 기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경주 등에서 출토된 십자형 유물 등을 통해 구체적인 꿈을 꾸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그 옛날, 이 대륙의 끝자락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까지만 하더라도 그 발생지역에서부터 엄청나게 먼 거리를 거쳐 전래된 것임이 분명한 그 길을 통해 혹시 우리들의 관심사인 맥주 빚는 방법도 전해지진 않았을까?’하는 거 말이다. 아쉽게도 능력의 부족과 자료의 협소함(을 핑계로 빠져나갈 구멍마련 신공!)으로 아주 옛날로 가 보지는 못했지만, 나름 재미있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이 땅 맥주(?)에 대한 관심은 지금 맥주에 대한 배경과 생각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2

조선시대에도 맥주가 있었다?

놀랍게도 맥주(麥酒)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영조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군문(軍門)에서 음식을 주어 위로할 때는 탁주(濁酒)만을 쓰고, 농민들의 맥주(麥酒)와 탁주역시 금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과 기근이 잦았던 조선은 왕명으로 금주령이 많이 시행되었다. 그 중에도 영조는 52년의 재임기간 동안 시도 때도 없이 금주령을 선포했고, 심지어 술 한 잔을 문제 삼아 고위관료를 참수형에 처한 적도 있었다. 이토록 살벌한 영조였지만, 군역으로 끌려온 민초들과 농민들의 술까지는 금할 수 없었던 듯하다. 게다가 실록의 다른 면을 보면 놀랍게도 영조자신이 송절주를 거의 매일 마실 정도로 한 술했던 양반임을 알 수 있다.

 

가만히 여항(閭巷)에 전해진 말을 들으니, 혹은 성상께서 술을 끊을 수 없다고들 한다는데, 신은 그 허실을 알지 못하겠지만 오직 바라건대, 조심하고 염려하며 경계함을 보존토록 하소서.

 

한마디로 좀 작작 드셔 이양반아!’라는 조명겸(1736)에게 영조는 참으로 기상천외한 답변을 던진다.

 

내가 목을 마를 때에 간혹 오미자차(五味子茶)를 마시는데, 남들이 간혹 소주(燒酒)인 줄 의심해서이다.

 

왕이 오미자차라는데 어쩌랴? 차인거지.......술에 대해 권력자들과 민중들에 대한 영조의 이중 잣대는 아마도 무수리출신 어머니라는 배경으로 인해 항상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던 그가 기세등등한 사대부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이렇게 술에 대한 기록이 많은 영조 덕분으로 우리는 적어도 조선중후반에 맥주라는 이름의 술이 이 땅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조선에는 모미주(牟米酒)’라는 술도 있었는데, 모미는 보리를 뜻한다. 물론 당시의 맥주나 모미주가 요즘맥주의 맛과는 사뭇 다르겠지만, 지금 맥주의 중요 첨가물인 홉이 15세기 이후부터 쓰였음을 감안한다면 그건 맥주 아니야!’라고 깔끔하게 단언할 순 없을 것이다. 15세기 이전 사람들도 분명 자기 잔에 든 액체를 맥주(Beer)'라고 외치며 마셨을 테니 말이다.

 

3

그럼 지금과 같은 형태의 한국맥주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그건 일본이 미국에게 당한 함포외교를 그대로 조선에게 써먹은 결과로 맺어진 강화도조약(1876) 이후 삿뽀로, 기린 등이 한양에 진출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처음 이들의 매출실적은 형편없었는데, 제 나라 대문을 대포로 부수고 들어온 이들의 것을 곱게 볼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식량수탈을 극대화하고 자국 양조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1909년 가양주(집에서 빚는 술)금지를 골자로 하는 주세령을 시행한다. 이로써 조선의 전통주와 누룩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일본맥주 판매량은 급증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조선맥주회사(일본맥주 방계) 동아맥주회사(기린맥주 소유)가 세워지면서(1933~34), 지금에 이르는 한국맥주근현대사의 양대 독점세력이 생산을 시작하게 된다. 아울러 앞서 설명한 조선의 전통맥주(혹은 모미주)지금에선 그 실마리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단절되고 말았다.

한편 해방이후 이 두 맥주회사는 국가권력의 전폭적인 후원 속에 각각 크라운맥주(조선맥주) 오비맥주(동아를 이은 동양맥주)로 전환하였고,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부터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로 각각 사명을 변경한 이 둘은 카스 생산을 시작한 진로쿠어스와 함께 3파전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럼 지금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빚더미에 앉은 진로의 맥주라인을 오비맥주가 인수함에 따라(하이트는 진로소주라인을 인수) 다시 양대 체제로 돌아갔다. 물론 2013년 개정된 주세법 시행령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맥주양조 및 판매가 가능하게 되어 세븐 브로이 등의 마이크로 브루어리와 함께 유통업계의 공룡인 롯데(클라우드)가 맥주시장에 뛰어들긴 했지만, 생산량에 있어 아직 갈 길이 멀다하겠다.

 

4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

이는 201211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자 다니엘 튜더가 쓴 기사인데, 이후 그는 기자를 때려치우고 이태원에 더 부스라는 에일 맥줏집을 시작했다. 아무튼 맛이 없다면 그냥 없다고 할 것이지 왜 애먼 북은 들먹거리는지, 그리고 대동강 맥주가 더 맛있는 이유가 자기네 나라인 영국의 설비를 들여왔기 때문이라는 것과 앞서도 말했듯 이후 한국에서 술집을 연 그의 속내가 몹시 의뭉스럽긴 하지만, 한국맥주에 대해 싱겁고, 특색이 없다는 다니엘의 견해에 대체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고 속상할 따름이다. 처음 언급했던 경교의 선교정책이 의미와 가치에도 불구하고 특성 없는 동화정책으로 지금에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듯, 출생부터 성장 전반의 한계 등을 인정하고서라도 한국의 특색 없는 맥주 공룡 두 마리는 밀려드는 세계 맥주 앞에서 흔적도 없이 쓰러지고 말 가능성을 충분히 가진다고 하겠다. 그리고 2001년 합병 이후 버드와이저, 호가든, 벡스 등으로 유명한 다국적 맥주기업 안호이저-부시 인베브 동아시아 생산 기지가 되어버린 오비맥주의 상황을 볼 때, 이는 결코 지나친 음모론만은 아닐 것이다. 거대한데 밍밍한 것보다 작지만 개성 넘치는 한국맥주와 한국교회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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