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동조합의 유래와 역사 (레디앙 기사)

by GILMOK0510 posted Apr 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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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운동의 유래와 역사, 의미

[협동조합 역사/의미/미래①]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출발한 실천의 역사

By 김기태  /   2012년 7월 26일, 11:3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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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또한 한국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어 올 12월에 발효될 예정이다. 생협을 비롯하여 협동조합운동은 한국 시민사회에서도 중요한 운동과 조직으로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이에 레디앙은 협동조합의 역사와 의미, 장점과 단점, 이후 전망 등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의견들을 실을 예정이다.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에서 역사와 의미, 전망 등에 대해서 연재 기획글을 맡아주셨고, 해외와 한국 사례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현장의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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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운동의 토양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전통적인 농업은 개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지역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여 발전해왔다. 우리나라의 두레나 계와 같은 다양한 공동체들은 생산과 소비, 생활과 문화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

공동체가 유지되는 속에서도 시장은 있었다. 쓰고 남은 물품들을 정한 날짜에 열리는 시장에 가져와 교환하는 시장은 이미 고대나 중세에도 있었다. 이 때에 시장은 경제의 중심이 아니라 보조적인 역할만 수행했다.

하지만 생산력이 점차 발전하고 원거리 무역이 늘어나면서 시장은 점차 확산되었다. 상업자본이 생산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뉴팩처링 단계에서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생산’이 확대되었다.

18세기 말엽 증기기관의 발명과 공장제 생산이 도입된 영국을 선두로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산업자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시장은 단순한 교환의 공간에서 벗어나, 부를 축적하기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시장이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사회 전체를 자본주의적 체계로 전환시키고, 공동체는 자본주의 시장을 강화시키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강제장치로 인해 파괴된다.

영국의 엔클로저운동은 이런 초기 자본주의 체제의 강제성과 폭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양을 키우기 위해 혹은 판매용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지는 울타리로 둘러싸이고, 대대로 농사를 지었던 농민들은 도시로 내몰리게 된다. 빈털터리로 도시에 내몰린 농민들에게는 공장에 노동자로 취직할 자유와 감옥에 갈 자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구빈법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노동자들은 생산과정에서는 저임금에 시달리게 되고, 생활은 공동체가 파괴된 도시에서 개별적으로 살아가도록 방치되었다.

이런 초기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구조에 대해 다양한 해법들이 나타나게 된다. 가장 단순한 대응이었던 공장의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운동, 노동자들이 술을 절제해야 한다는 금주운동, 자본가들에 대해 협상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자는 노동조합운동, 노동자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는 차티스트운동 등과 함께, 아예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인이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로버트 오웬의 뉴하모니 공동체 운동 등이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협동조합의 하나인 스페인 몬드라곤 공동체

이런 여러 운동들이 갑론을박하는 속에서 작은 돈을 모아 공동으로 사업을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18세기말부터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현실가능한 원리를 찾지 못해 40여년 가량 실패를 반복하게 되었다.

 

최초의 성공적인 협동조합 :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협동조합으로 인정받고 있는 로치데일은 유명한 사상가가 고안하여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었다.

오히려 1943년 노동조합운동의 동맹파업이 실패로 돌아간 후 실의에 젖어있던 노동자들이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한 몸부림에서 만들어졌다. 금주운동, 노동조합운동, 차티스트운동을 주장하던 로치데일 지역의 노동자들이 모여 우선은 적정한 가격으로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일용 생필품을 공동으로 구매하는 낮은 단계의 활동부터 시작하여, 장기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통합하는 협동조합사회를 만들자는 웅장한 비전을 공유하면서 로치데일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기존의 협동조합의 문제점을 토론을 통해 분석하면서 1)시중가격과 같이 공급하는 시가주의 원칙, 2)현금거래 원칙, 3)출자금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한 만큼 수익을 나눠주는 이용액 배당의 원칙을 채택했다. 이 세 가지 원칙이 로치데일을 성공시킨 ‘혁신적 상상력’이었다.

1844년 12월 28명의 조합원이 1년 동안 매주 2펜스씩 겨우겨우 모은 1파운드(40만원 정도)의 개인별 출자금을 합해 만든 협동조합은 자본이 부족하여 허름한 토방에서 버터 25kg, 설탕 25kg, 밀가루 6봉지, 곡물가루 1봉지, 양초 24개가 진열된 상품의 전부였던 초라한 가게로 시작했다.

하지만 미약하게 시작한 로치데일협동조합은 정확한 물량, 불순물이 들어있지 않는 품질, 정직한 판매, 이용액 배당 등 로치데일의 주민들이 정말 바래왔던 사업방식을 통해 큰인기를 얻었고, 급속히 확대되었다. 1866년에는 조합원수는 50배, 자본금은 400배로 늘어났고, 1851년에는 매일 새로운 점포를 열었다. 소비자협동조합의 시작이었다.

 

유럽 전역으로 협동조합이 확산되다

 

영국에서 성공적인 협동조합이 만들어져 확산되는 모범사례가 있다는 소식은 유럽 전역에 전파되어 여러나라의 선구자들이 직접 견학하러 왔으며, 성공의 교훈을 각자의 나라에 전파했다. 지드(Gidle)는 프랑스에, 후버(Huber)는 독일에, 마찌니(Mazzini)는 이탈리아에 협동조합을 알렸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은 각각 자본주의의 성숙 정도나 사회경제적 여건이 달라 사정에 따라 적합한 방식으로 중요한 내용이 자리잡게 된다. 프랑스는 아직 해체되지 않은 장인과 도제 혹은 농촌지역의 농민들이 주도하는 생산협동조합이 확대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도시지역의 생산협동조합은 자취를 감추고 농업협동조합은 현재에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독일은 자본주의 발전이 늦어 사회 전반적으로 자본축적이 미흡한 상황이었다. 당시의 라인 강변의 소농들은 농사를 지을만한 돈을 마련하기 어려워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849년 라이파이젠은 프람멜스펠트 빈농구제조합을 설립했다. 이 조합은 농민들이 가축을 구입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60명의 조합원이 무한연대책임으로 자본가의 돈을 빌려 가축을 사고, 5년 분할 상환을 하는 새로운 방식의 협동조합을 도입하고 실행시켰다.

이 조치로 농민들의 생활이 눈에 띄게 나아지자 농촌을 중심으로 라이파이젠계열 신용협동조합은 크게 확산되었다. 라이파이젠 신용협동조합은 마을이나 교구 등 조합원이 서로 얼굴을 알 수 있는 작은 규모로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협동조합간의 여유자금이나 부족자금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연합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1872년 라인주에서 만들어진 75개의 신용협동조합을 회원으로 하는 연합회 성격의 ‘라인농업협동조합은행’이 설립되었다. 협동조합연합회가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소비자협동조합, 생산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이 고루 발전하여 나갔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초기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을 발전시킨 사상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파괴적 성격을 보완하는 자유주의적 협동조합이었는데, 이후 1880년대부터 사회주의자가 주도하는 협동조합운동이 확대되면서 협동조합연맹이 분리되었다.

이후 이탈리아에는 카톨릭 계열, 사회주의 계열, 자유주의 계열의 협동조합연합회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발전해 왔다.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도 농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발전했다. 1882년 낙농협동조합과 1887년 양돈협동조합이 등장하였으며 1890년까지 목장의 3분의 1이 협동조합에 우유와 돼지를 출하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소농들의 절반 정도가 농업협동조합에 가입하였으며, 멀리 캐나다와 미국으로도 협동조합이 전파되어 아직도 지역사회를 떠받치는 데자르뎅신용협동조합이 1900년에 설립되었고, 미국에서도 1909년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후 미국은 농업협동조합이 다양하게 확산되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농업협동조합이 곡물의 경우에는 지역단위별로 오렌지 등 과실류의 경우에는 품목협동조합으로 발전되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의 결성과 협동조합 원칙의 제정

 

이런 다양한 국가별 실험들은 지금은 협동조합이란 동일한 조직 운영원리 하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이 19세기 후반에도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비자협동조합과 생산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의 지도자들은 이들 협동조합이 같은 종류의 사업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컸다. 각각의 법인격도 모두 달랐다.

1884년 프랑스와 영국의 협동조합운동가들이 국제적인 협동조합 교류를 제안한 후 11년만인 1895년 런던에서 국제협동조합연맹(ICA) 1차 대회가 열렸다.

이 11년의 기간은 각 나라의 협동조합들이 유사한 원리를 가졌다고 서로 합의하는데 소요되었다. 이런 낮은 수준의 합의를 바탕으로 국제협동조합연맹은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을 포괄하여 설립하되 협동조합원칙에 대해 지속적으로 토론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협동조합 원칙을 합의하는 데에도 이후 40여년의 기간이 걸렸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자유주의 협동조합과 사회주의 협동조합, 협동조합주의 협동조합의 의견차이를 좁혀야 했기 때문이다.

2011년 국제협동조합연맹 총회 모습(사진=icoop)

 

주된 논점은 이용액 배당의 의미, 정치 종교적 중립에 대한 입장 등이었는데 많은 토론 끝에 단일한 원칙을 합의하게 된다.

설립 40년만인 1937년 프랑스 파리대회에서 7대 원칙을 정했고, 이후 196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수정원칙을 제정했으며, 협동조합의 위기를 극복하기위한 노력으로 1995년 100주년 행사에서 영국 맨체스터에서 현재의 원칙을 담은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을 발표했다.

현재 국제협동조합연맹은 96개국 267개 회원 단체가 가입하고 조합원수는 10억명에 달하는 UN산하 최대 비정구기구로서, 소비자, 농업, 주택, 신용, 노동자생산, 어업협동조합 등 모든 협동조합유형을 포괄하고 있다.

 

새로운 협동조합들의 탄생1 :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사업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경제학적 설명이 있다. 또한 실제 프랑스 등에서 실험한 생산협동조합이 실패로 돌아가자 노동자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56년 시작된 스페인의 몬드라곤에서 꽃 핀 협동조합복합체의 사례가 세계로 알려지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스페인 북부에 있는 바스크지방은 우리나라의 강원도 같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1941년 프랑코 정권에 패배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몬드라곤이란 작은 마을로 부임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바스크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1943년 소년들에게 산업기술을 가르치는 직업기술학교를 만들었다. 20명으로 시작된 기술학교는 11명이 졸업하였으며, 이 가운데 5명을 인근 지역의 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다. 이들 5명이 힘을 모아 1956년 ‘울고’라는 석유난로를 생산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시작한 다른 지역의 사례와 달리 몬드라곤에는 노동자협동조합을 금융과 창업컨설팅, 연구개발, 사회복지사업을 담당하는 전문협동조합을 접착제로 활용함으로써 크게 발전해 나갔다. 현재는 120개의 협동조합과 130여개의 자회사가 있는 스페인 고용순위 3위의 협동조합그룹이 되었다.

대표적인 공업협동조합인 파고르는 유럽 전체에 걸쳐 냉장고 등 전자제품을 판매하고 있고,기술연구소의 역량은 NASA의 우주항공사업의 프로젝트를 함께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몬드라곤은 인간과 지역이 통제할 수 있는 자본,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첨단기술이란 꿈이 말뿐만 아니라 실제 실천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협동조합들의 탄생2 : 사회적협동조합

 

1974년 이탈리아 볼로냐에는 독특한 협동조합이 선을 보였다. 그 전까지 협동조합은 사회경제적 약자인 조합원들이 힘을 모아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가는 공익(共益)을 추구했지만, 새로운 협동조합은 사회경제적 약자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공익(公益)을 추구하려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축적된 자본이 많아지면서 사업의 경쟁은 심화되고 예상되는 이윤율은 낮아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속할 수 있는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자본금의 최소수준이 높아지게 되는데, 어려운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필요한 출자금을 확보하고 사업역량을 갖추는 것은 19세기 중엽보다 더 어려워졌다. 따라서 헌신적이고 역량있는 협동조합운동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관련 예산, 기존 협동조합들의 협력 등 다양한 자원을 연결하는 새로운 협동조합이 필요했다.

이를 사회적협동조합이라 하는데 CADIAI는 그 최초의 사례이다. 가사원조노동이나 간병노동을 하던 이들 여성들이 모여 불안정한 비정규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든 27명의 여성들로 출발한 CADIAI는 이후 이탈리아에서 사회적협동조합법이 만들어지고 공적기관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업영역이 확장되었다.

현재 직원은 1,246명이며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을 포함해 한해 27,400여명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원칙인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는 협동조합의 사업 자체로도 가능하다는 모델을 보여준다.

 

새로운 협동조합들의 탄생3 : 협동조합의 모델과 경영의 확대

 

1945년 후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초국적 금융자본주의 중심으로 재편되어 갔다. 협동조합들은 거대한 다국적기업의 공격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따라서 작은 협동조합들은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도 하고, 필요한 자본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농산물가공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조합원이 물량을 내는 만큼 출자금을 매년 조절하고, 조절될 출자금에 비례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는 협동조합과 주식회사를 반쯤 섞은 듯한 새로운 협동조합이 출현했다. 이를 신세대협동조합이라고 하는데 썬키스트가 그 대표적인 형태다.

일본의 진보적이고 사회와 함께 하려했던 대학생들은 1970년대 사회로 나와 대거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유럽의 소비자협동조합과 달리 일본의 생활협동조합은 좋은 생활필수품을 구매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5~10가구를 하나의 소조직인 반(班)으로 묶었다. 생협은 지역사회에서 발생한 환경문제나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출하고, 조합원들의 공동행동을 만들어 나갔다. 이런 일본생협의 모범사례는 이후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다.

이런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에 대한 평가는 좀 더 기다려봐야 하겠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역사를 간단하게 훑어보면 성공적인 협동조합은 어떤 것이든 당시 사회가 가장 필요로 했던 ‘무엇’을 상상력을 동원해 사업형태로 구상하고 조합원의 참여를 유도하는 혁신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의 역사는 이데올로기와 이론이 주도하는 역사가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실천의 역사였다. 문제는 해석이 아니라 실천인 것을 협동조합의 역사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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