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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저 꽃이 불편하다
저 꽃이 불편하다
모를 일이다 내 눈앞에 환하게 피어나는
저 꽃덩어리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거
불붙듯 피어나
속속잎까지 벌어지는 저것 앞에서 헐떡이다
몸뚱어리가 시체처럼 굳어지는 거
그거
밤새 술 마시며 너를 부르다
네가 오면 쌍소리에 발길질하는 거
비바람에 한꺼번에 떨어져 딩구는 꽃떨기
그 빛바랜 입술에 침을 내뱉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흐느끼는 거
내 끝내 혼자 살려는 이유
네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박영근)
봄비
누군가 내리는 봄비 속에서 나직하게 말한다
공터에 홀로 젖고 있는 은행나무가 말한다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힘든 네 몸을 내려 놓아라
네가 살고 있는 낡은 집과, 희망에 주린
책들, 어두운 골목길과, 늘 밖이었던
불빛들과, 이미 저질러진
이름, 오그린 채로 잠든, 살얼음 끼어 있는
냉동의 시간들, 그 감옥 한 채
기다림이 지은 몸 속의 지도
바람은 불어오고
먼 데서 우레소리 들리고
길이 끌고 온 막다른 골목이 젖는다
진창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아잇적 미소가 젖는다
빈 방의 퀭한 눈망울이 젖는다
저 밑바닥에서 내가 젖는다
웬 새가 은행나무 가지에 앉아 아까부터 나를 보고 있다
비 젖은 가지가 흔들린다
새가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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