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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4 00:12

수화기 속의 여자 -이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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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속의 여자

 

어디서 잘라야 할 지 난감합니다. 두부처럼 쉽게 자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어딘지 서툰 당신의 말, 옛 동네 어귀를 거닐던 온순한 초식동물 냄새가 나요.

내가 우수고객이라서 당신은 전화를 건다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수고객이었다가 수화기를 놓는 순간 아닌. 우린 서로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선생님, 듣고 계세요?’
‘...................네’
‘이번 보험 상품으로 말씀 드리면요’

  나와 처음 통화 하는 당신은 그날 고개 숙이던 면접생이거나

언젠가 식당에서 혼이 나던 종업원이거나 취업신문을 열심히 뒤적이던 누이.

당신은 열심히 전화를 걸고 나는 열심히 전화를 끊어야겠지요.

어떡하면 가장 안전하게, 서로가 힘 빠지지 않게 전화를 끊을 수 있을까요?

눈만 뜨면 하루에게 쉼 없이 전화를 걸어야 하는 당신.

죄송합니다. 지금 저 역시 좀처럼 대답 없는 세상과 통화중입니다. 뚜뚜뚜뚜. 

(이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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