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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빈 의자/ 김수영
열두 개의 빈 의자
가난뱅이 고흐는 의자를 열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한 번도 앉지 않은 팔걸이가 달린 의자들
파이프를 얹어둔 낡은 밀짚의자는
내 방 구석에 걸려 있다
빵을 굶어가며 마련한 새 의자
그는 누구를 기다리며 의자를 비워 두었을까
한밤중 신발을 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광부를 위해
어두컴컴한 식탁에 둘러앉아 감자를 먹는
농부를 위해
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진
사이프러스 나무를 위해
창을 열듯 제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는
해바라기를 위해
그리고, 쪽창으로 들어오는 별빛을 바라보는
그 자신을 위해?
어떤 모습이든 그들은 의자에 앉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처럼 그를 에워싸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초대한 손님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의 쓸쓸함이 부른 손님들인 것이다.(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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