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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맥주에 스미는 인문학)

 

수다6: “아인 프로지트!” - 가톨릭과 바이에른이 빚은 남독일의 밀 맥주

 

고상균

 

아인 프로지트! 아인 프로지트! (건배! 건배!)

데어 게뮈트리히카이트 (지금을 즐기자!)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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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밤공기가 차가와졌다. 멋모르고 열어두었던 새벽 창문으로 앗! 스러운 냉기가 스며들고, 아침 출근 나절, 콜록거리며 옷깃을 여미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모두를 지치게 했던 여름이, 한순간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에 약간 서운해지기도 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슬슬 긴 옷이 몸에 편하고, 시원한 맥주보다는 오뎅 국물에 쏘주나 사케 한잔이 더 생각나게 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맥주 하면 생각나는 나라 독일 및 인터내쇼날 주당들의 마음이 설레는 계절은 9월과 10월이다. 뭐 그러한 이들이 맛있는 맥주를 생각하며 설레지 않는 날이 없겠지만서두! 그곳으로부터 지구를 휙 돌아 있는 이 땅에서도 한 번 쯤 이름을 들어보았음직한 옥토버페스트 축제가 바로 10월 첫 주 주일을 최종일로 15일간 열리기 때문이다. 한 술 잡솨주신다는 분들은 누구나 마음 속 이상향 중 하나일 것인 이 축제의 개최지가 남부 독일의 중심, 과거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 뮌헨에서 열리는데, 바로 이 동네가 오늘 우리가 함께 수다 한 잔할 곳이다.

 

2

지난 달 함께 살펴보기는 했지만, 일연방이라는 지금의 단일 국가 독일은 오랜 시간 동안 봉건영주 혹은 인근 패권국가의 영향력별로 나뉘어 있었고, 종교적 성향(남부는 가톨릭, 북부는 개신교)도 매우 달랐다. 이후 프로이센의 철권에 인근 지역이 병합되던 시기 형성된 독일의 제2제국도 베를린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 독일을 중심으로 했던 바, 오스트리아 제국이 패퇴하기 전까지 바이에른은 북부에서 발흥한 프로이센과 함께 할 생각이 없었고, 복속과정에서 겪었던 굴욕(전쟁 패배 후, 프로이센 왕을 황제로 추대하자는 편지를 바이에른 왕이 직접 작성해서 유럽 전 지역에 발송해야 했던 일 등) 명의로 인해 북부지역에 대한 감정도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망언과 군사대국화 정책으로 인해 영 가까이 하기 불편한 일본이지만, 사진 쫌 찍어주신다 하고 싶을 땐 접사의 제왕은 니콘이네 손맛은 역시 캐논이네를 언급해야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당시의 남부인들에게 그토록 함께하고 싶지 않은 북부이지만, 그들이 생산해내는 맥주에는 탄복을 금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30전쟁으로 북부의 생산기반이 모두 파괴되기 이전까지 남부는 맥주에 있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이에 왕실과 귀족들은 앞 다투어 북부의 맥주를 수입해서 마셨다. 이는 왕실과 국가 재정 적자를 발생시켰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왕인 빌헬름5세가 직접 나서기에 이르렀다. 자신이 국가 최고의 주당이기도 했던 그는 해마다 늘어가는 대() 북부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이윤이 큰 맥주산업을 독점하기 위해 대대적인 품질향상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우선 선왕 빌헬름4세가 공포했던,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 정착을 위해 강력한 통제정책을 실시하였다.

 

하루에 최소 샘플 6개를 관능검사 할 것. 검사를 행하는 자는 시음 전날 밤에는 맥주나 와인을 과음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관능검사 당일에는 미각을 마비시킬 만한 음식물도 삼가야 한다. 예컨대 소금에 절인 짠 생선이나 맛이 강한 치즈, 사탕과자 등을 먹으면 안 된다. 물론 코담배와 씹는담배도 포함하여 흡연을 엄금한다.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품질 검사지침에서 볼 수 있듯, 당시의 바이에른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맥주품질향상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대를 물리며 강력하게 추진된 맥주 순수령, 즉 보리, , 물로 만든 것만 맥주로 인정한다는 이 법령은 그 대상에서 교회와 왕실 양조장을 예외로 하였고, 이는 결국 이들에 의한 밀맥주 독점을 보장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양조장인 바이헨슈테판(725, 베네딕트 수도원 양조장으로 출발)의 그 묵직하고도 감미로운 맛과 향긋함 속에 깊은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파울라너(1780년 일반 판매 시작, 북부 개신교세력의 성장을 우려하며 () 파울라의 제자회수사들을 초청하여 설립한 수도원 양조장) 등은 이와 같은 바이에른 왕가의 정치-경제적 비호 속에서 당시 남부 독일의 가톨릭 수도원 양조장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 대표적 남독일 밀맥주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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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바이에른 왕실은 북독일의 양조기술자들을 스카우트 했으며, 아예 술집 호프브로이하우스 직접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와 같은 다각도의 정책추진, 30년 전쟁으로 인한 기반시설 파괴 등, 바이에른의 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점차 남독일의 맥주는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편 앞서 언급했던 호프브로이하우스와 같은 장소들은 애초 귀족들만을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술집이었으나, 다른 시민들에게도 개방되었고, 곧 많은 이들이 편하게 찾아와 맥주 한 잔을 나누며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점차 이들 비어홀들은 중요한 시민정치공간이 되어갔다. 비어홀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정치적 장이었는가에 대한 역설적 예는 아돌프 히틀러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전복시킬 국가주의를 구상하던 히틀러는 이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증폭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고심하였고, 이런 그에게 지목되었던 곳이 바로 앞서 설명한 호프브로이하우스였다. 1920224일에 있었던 나찌의 첫 집회는 그렇게, 술집에서 열렸고, 이를 시발점으로 뮌헨 전 지역의 비어홀에서 발생했던 폭동을 주도하면서 세력을 확장한 나찌와 히틀러는 마침내 정권찬탈과 일당독재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사실 나찌가 아니더라도 이미 독일지역에서 가르텐비어(Garten Bier)로 불리는 문화에서 맥주마시는 공간은 점차 많은 군중이 모여 정치적 문제를 논의하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었고, 대중을 선동하려는 이들이나 각종의 조직가들 모두 맥주를 만남과 연대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저 유명한 로자룩셈부르크의 전쟁 국채 발행 반대/반전 연설장소가 뮌헨의 킨들 홀이었던 이유, 바이에른 인민공화국을 선언한 노동자와 군인들이 본부가 마테저브로이 호프였던 점, 나찌당의 창당대회 장소가 슈테르네커브로이라는 술집이 된 배경에는 모두 이와 같은 좁게는 바이에른, 넓게는 독일지역의 문화-사회적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후 앞서 언급했던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는 나치와 사회주의자들이 맥주잔을 들고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고, 훗날 히틀러 폭살(爆殺)을 시도했던 장소도 역시 맥주집이었다. 이후로도 독일좌파의 중심이 뷔르거브로이켈러라는 비어홀이었던 점 등 독일 근현대사의 주요 무대의 상당부분은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며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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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집권 세력에 따라서는 비어홀을 규제하거나 둘 이상이 모여 맥주마시는 것 자체는 제한함을 통해 노동자 및 대중들의 모임이나 여론 형성의 장을 없애려했다. 앞서 보았듯 맥주집정치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던 나찌 역시 그 맥주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알콜은 아리안의 적이라는 식의 선동문구와 함께 대중 술집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지난번에 이어 살펴본 독일에서 맥주는 단순한 술이나 음료가 아닌, 민중의 주요한 생계수단이었고, 삶의 현장이었으며,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였고,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의 수도원은 질 좋은 맥주의 보존과 생산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정권과 결탁하여 민중의 돈을 빨아들이기도 했다. 마트 할인코너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 아름다운 아이들은 그 길고 긴 맥주의 강을 지나 우리에게 향취와 함께 함께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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